패션 잡지 Cafe Orange 창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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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Orange ? Fashion & Culture Magazine of Orange No. 01. 2009 48~51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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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어도... 잠자리의 비상(飛上) 가냘픈 듯, 연약한 듯, 부서질 듯, 위태롭게만 보이는 잠자리의 날개짓은 거친 새의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의 물결과는 또 다른 공기의 유연함을 남긴다. 작가 김창한의 작품을 통해 만나는 잠자리의 계절은 그래서, 놀랍도록 인간의 삶과 닮아있다. 에디터_김지은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넘쳐나는 자연의 순수함과 일상의 자유로움, 작가 김창한이 일관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연과 인간의 이미지는 언제나 건강하고 역동적이다. 계절의 변화, 시간의 흐름, 공기의 떨림이 만들어 내는 놀랍고도 대담한 방식을 담은 잠자리는 자연과 하나 되는 무아(無我)의 경지와 삶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현실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 동시대적인 것에 대한 통찰력, 전통과 미래의 접목 속에서 발견하는 자연과 인간의 정체성은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또한 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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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창한 -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일본, 호주, 중국 등지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 그리고 아트페어전 출품 등을 통해 자연의 순수하고도 경이로운 모습을 표현하는 작가로 이름을 알려왔다. 그의 잠자리와 사과나무, 홍매화 연작은 그가 가진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한 희망적인 찬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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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 Sun" Magazine 예술가 김창한과 홍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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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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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김창한과 홍매화 클레어 웰너 김창한씨는 깊은 생각에 잠긴듯한 모습으로 통도사 (울산 남쪽에 위치한 사원) 중앙에 있는 대규모의 캔버스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작품은 통도사에 온 사람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둘려싸고 있었다. 그의 캔버스는 마치 교통정리를 하는듯 했는데, 그것은 너무나 컸고 사람들과 카메라맨들이 그와 그의 아름다운 작품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의 주제는 일요일 아침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이 만발한 홍매화였다. 4 피트 넓이의 이 작품은 분홍색의 홍매만 보여주는것이 아니라 그 그림 앞에 서 있는 이 남자를 반영하고 있었다.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그는 겸손했지만 그의 작품과 주위의 사물에 대한 강한 열정을 느낄수 있었다. 김창한씨가 지난 6년동안 그림을 그려왔던 통도사는 그에게 있어 자연의 아름다운과 평화로움을 찾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오직 3월에만 만발하는 이 나무를 그리기 위해 그는 아침 8시 30분에 이곳에 도착했다. 200년이 넘은 이 홍매화 나무의 개화기는 따듯한 봄을 알리는 예고 와도 같다. 3월에만 이 나무를 그릴수 있고 보통 일정한 기간에만 완전히 만발한 꽃을 볼수 있다. 그는 이 나무가 언제 가장 만발한지 (언제가 그림을 그리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인지)를 설명했다. 그는 2년전 지금과 거의 같은 장소에서 조금더 작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었다. 그는 다시 한번 같은 곳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말했다. 사실 그는 자주 같은 주제들을 찾아가곤 한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잠시 휴식을 갖으며 옆에 있는 작은 캔버스들을 보여주었다. 하얀 틀 안에 색들이 칠해져 있었지만 완성된 것은 아니였다. 그는 잠자리 작품들을 몇점 더 그린후에야만 오늘의 통도사 방문을 끝낼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벌써 몇년동안 잠자리들을 그려왔고 200 - 300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오래도록 존재했고 많은 사랑을 받아온 그의 주제를 설명하기위해 알맞은 단어를 골똘히 생각한후 “잠자리는 순수함, 자유, 그리고 아름다움을 표현하죠” 라고 말했다. 김창한의 작품은 자연과 너무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선면하면서도 짙은색을 좋아하는 그에겐 자연만이 진정으로 (??)할 수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바로그가 태어난 곳에서 가까운 안동의 사과 나무이다. 그가 기억하는 한 평생 그는 그림을 그려왔지만 아무도 유년시절의 그에게 화가가 되라고 장려하지 않았다. 다른 평범한 한국 부모와 마찬가지로 그의 부모님 또한 화가가 되겠다는 그의 결정에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화가는 보통 돈을 잘 벌지 못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좋은 학생이였지만 그의 직업은 바뀔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부모님들도 도움을 많이 주시진 않았지만 그가 그의 꿈을 쫒는것을 허락하셨다. 호주에 있는 동안 김창한은 그의 작품의, 아니 한국 예술가들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퀸즐랜드에서 개인전을 하면서 그는 호주 예술가 레이니 쿠퍼를 만났다. 그들은 국제적 예술 공동체 와 문화 교류에 관해 얘기했고 이 둘의 우정에서 ICC 가 탄생했다. International Creative Community (ICC)는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걸 원하고 자신들의 작품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길 바라는 전 세계 예술가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와도 같다. ICC 는 독특한 거주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참여하는 예술가들 서로의 집에서 홈스테이하는것이다. 그럼으로써 단지 개인, 혹은 직접적 문화 체험만 할뿐 아니라 중간인의 필요를 없앨수 있다. ICC는 예술가들에 의한, 예술가들을 위한 조직이다. 그는 지금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울산에 거주중이다. 가르치는것은 괜찮지만 그 외에 다른 작은 일들은 조금 지루하게 느낀다고 했다. 미래에 대해서는 “저는 그림만 그리고 싶어요” 라고 그는 말했다. 가끔씩 그는 교직에서 물러나 오직 작업활동에만 전염할수 있길 바래본다. 그는 얼추잡아 주말에 9시간 정도를 작업하는데 보내며 이 시간은 해가 짧은 겨울이 되면 짧아질수밖에 없다. 그는 많은 방법을 시도하지만 보통 야외에서 작업할때는 유화를 즐긴다. 그는 말하며, 한발 물러나 물을 뿌린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먼지가 날려 작품에 뭍는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처럼 그 또한 작은 세부 사항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세심하다라고 말하기엔 그 표현이 부족했다. 완벽한 색을 위해 그는 오랜시간동안 세겹의 gesso 로 캔버스를 덥는다. 그 후에는 흰색 유화 물감이 칠해진다. 이럼으로써 그는 무엇을 그리던지 완벽한 배경을 가질수 있게 된다. “저는 향상 어느정도의 여백을 남깁니다. 또 다른 세계일수도 있고 혹은 하늘일수도 있죠. 한국화에서 하늘은 파란색이 아닙니다. 그것은 백색이죠. 그리고 저도 백색을 남깁니다.” 라고 말했다. 그의 방식은 전통적인 한국화와 서양화의 결합이다. 그가 그린 이미지 그 이상을 본다면 그의 작품은 보다 더 국제적이다. 물감은 프랑스에서 왔다. “이것이 세계적인 그림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그림 그리는것은 세계적으로 성명을 발표하는것이 아니다. 작품에 대한 그의 사랑이 있기에 작품은 스스로 자신을 표현할수 있다. “당신이 그림 그리는것을 좋아한다면 작품을 더 훌륭하게 만들수 있을거예요” 라며 그는 붓을 휘두르며 말했다. 그는 도구를 바꾸며 소형 trowel 로 짙은 분홍색과 심홍색을 썩고 나무를 한번 처다봤다. 대화를 하는 동안 빛이 바꿔 있었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는듯 보였다. 홍매화의 색은 옅어지지 않았고, 배경에 있는 사원의 지붕은 위풍을 잃지 않았다. “한시간만 더” 그는 말하며 캔버스로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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