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of the International Exhibition

"Impressions from Afar" - A Visitor's Perspective

 아름다운 이국의 풍물 展 - 전시기획

 

 

Ulsan Bukgu Culture & Arts Center Gallery

Tuesday, December 11 ~ Thursday, December 20, 2007

With performance, "portrait of a foreign artist in Korea, 2007

 

 

젊음의 문화 북구(울산광역시) 2007 기획전시

 The Vibrant World

 

 January 2007: The winter sea of the Gold Coast of Australia has an early morning breeze that feels cold. Those who are assimilated into nature, have their bodies moved by advancing waves like a fur seal or dolphin, and I...  2007년 1월, 차거운 새벽바람이 부는 골드코스트(호주)의 겨울바다, 마치 물개 혹은 돌고래처럼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실은 채 자연과 하나가된 그들, 그리고 나...

 Over the past several years: I have created many works in Australia using the galleries and seashores as a studio. I was sure I could share my ideals with the world, through art.  나는 호주에서 여러 해 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을 통해 세계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During my summer in America, 2002 : Daniel Julian invited me to his house. When I was drawing his burned cottage he said, "You have a magic hand." That was it. What he wanted was to be able to keep a precious memory about his house through my carefully rendered work. I am still dreaming about exciting world travel, carrying a painting set continually, in order to document and share my values with the people of the world through my paintings.    2002년 여름, 미국(Indiana), 그의 집으로 나를 초대한 Daniel Julian은 불타버린 그의 별장을 그릴 때 이렇게 말했다, “You have a magic hand". 그렇다, 그가 나를 좋아한 것은  불타버린 그의 집에 담긴 소중한 추억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그린 그림을 통해 세계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화구(畵具)를 들고 신나는 세계여행을 꿈꾼다.

 

 

 

 김창한(金昶漢)  CHANG HAN KIM   (Born in Yeongju, South Korea - Korean)

 골드코스트 해변 Surfers Paradise Beach on the Gold Coast, 72.7×60.6cm, Oils, 2007

   The Vibrant Beaches  Since July 2005, I have traveled a very long distance and visited an unfamiliar country, Australia. I had several exhibitions, two of which were solo shows.

   The beaches looked very beautiful to me. The panorama stirred feelings of great excitement in me. The images of the beach and surfers have been indelibly scorched in my mind. The glamour and grace of the surfer, coupled with the constant motion and power of the ocean forms a compelling spectacle of a daily lifestyle which I like very much.

   What I have painted on the canvas represents, for me, a going back to nature and a return to the human's pure, native state.

   골드코스트 해변    2005년 7월 이후, 멀고먼 낯선 땅 호주(濠洲)를 방문하면서 그곳에서 두 번의 개인전과 여러 화랑에서 전시를 하기 시작했다.    그곳의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운 거대한 파노라마의 연속이었고 가슴 짜릿한 전율이었다.  가슴이 통렬(痛烈)할 듯,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에 몸을 실은 채 터질 듯한  몸짓의 서핑 하는 모습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런 일상적인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들과 함께 자연으로,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캔버스에 담고자 했다.

 

President I.C.C Canada

 Finding My Family

 

 

 

 

 

 

 

 

 

 

 

 

 

 

 

 

 

 

 데비드 막리 DAVID MACRI  (Born in Winnipeg, Manitoba, Canada - Canadian)

 알프레드 어니스트 로이 한센

  Private Alfred Earnest Roy Hansen, 70x95cm, charcoal on paper

 www.davidmacri.blogspot.com

 

- Nearly two years ago, I decided to come to South Korea and teach English. At that time, my uncle George "Gary" Alfred Hansen was researching the family history from the Hansen (my mother's) side. When I left for Korea he told me about my great uncle who was buried in Busan. Private Alfred Earnest Roy Hansen was killed on February 25th,1951 while trying to advance with his unit (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to repel the invaders out of South Korea. Alfred came from a big family that was used to supporting each other in anyway they could. Their upbringing instilled compassion and strong moral values. They cared for family, friends, neighbors and even strangers. It was this system of ideals that led Alfred to Korea. Gary also told me that after speaking with Alfred's brothers and sisters, even decades later, it was evident how deeply he was missed.


   - I promised to visit the Busan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and lay flowers at Alfred’s grave. I would be the first from our family (the Hansens) to have the opportunity to do so. I found the beautiful UNMCK with flowers, sculptures and architecture befitting the sentiment of solemn pride. Following a narrow path, I found Alfred’s grave directly adjacent to the base of a Canadian flag. It gave me a strange patriotic comfort that he was the closest to it. I recognized the flag as a little piece of home.


- When I knelt down to look at the plaque that marked his resting place, I was shocked to see his age was merely twenty three years old. Being my grandfather’s brother, I mistakenly expected him to be an old man. Scanning some of the nearby headstones I realized most of the soldiers were younger than I, some being only eighteen. I felt a flood of emotions and thoughts of my family. I thought of my wonderful friends and the children I teach here in Korea and realized that without the sacrifice of Alfred and countless others, I would likely not have had the honor to meet them. The lesson to be gleaned from this inspiring experience was clear. Even thousands of miles away, I felt connected, at home, feeling the soundness of the morals Alfred was taught and that live on in subsequent generations.

 

 - In response, I have created a portrait as a tribute to Alfred’s contribution to the Korean War, our family, and my quest for understanding who I am and where I come from. At the very least, I have learned that we are all, in some measure, the sum of our actions, and that the past can inform what our actions may mean to the future.

David Frank Macri

나의 가족 찾기

 

- 많은 캐나다의 젊은이들처럼 연구자가 지니는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을 안은 채, 나는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칠 것을 결정했다. 그 당시에 나의 삼촌인, George "Gary" Alfred Hansen은 Hansen(외가 쪽인)쪽의 가족사를 조사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려 할 때 삼촌은 나에게 부산에 안치되어 있는 왕조부(할아버지의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군인이었던 Alfred Earnest Roy Hansen은 1951년 2월 25일에 죽었는데, 그 당시에 그는 남한에 침입한 침략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그의 부대(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프린세스 페트리시아 캐나다 경장비 보병부대)들과 진군하고 있었다. Alfred의 가족은 대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어떤 형태로든지 서로서로를 부양하곤 했다. 그들의 교육법은 사람을 향한 연민과 강한 도덕적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족, 친구들, 이웃사람들 심지어 낯선 이방인들까지 돌보아주었다. Alfred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바로 이러한 궁극적 이상을 추구하는 체계 때문이었다. Gary는 Alfred의 형제자매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그가 너무나 그립다고 말했다.


- 나는 삼촌에게 부산유엔국립묘지에 방문해서 Alfred의 무덤에 헌화할 것을 약속했다. 왕조부의 묘비를 찾아가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우리 Hansen 집안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온갖 꽃들, 조각품들과 건축물들의 엄숙한 자부심으로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유엔국립묘지를 찾았다. 좁은 길을 따라가니, 캐나다 국기게양대 바로 근접한 곳에 Alfred의 무덤이 있었다. 국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그의 무덤이 있었다는 것이 야릇한 애국적인 위안을 주었다. 나는 그 국기가 마치 고국의 한 부분인양 느껴졌다.


- 그의 무덤에 기록되어있던 내용을 보려고 무릎을 굽혔을 때, 나는 그의 나이가 겨우 23세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내 할아버지의 형제인지라 나는 당연히 그가 노인일거라고 오인했던 것이다. 근처에 있는 몇 개의 묘비를 훑어보는 동안, 대부분의 군인들이 나보다 더 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는 겨우 18세였다. 나는 가족에 대한 감정과 생각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곳 한국에 있는 훌륭한 친구들과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Alfred나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이들을 만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감동적인 경험으로부터 수집되는 교훈은 분명한 것이었다. 비록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나는 Alfred가 배워왔고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도덕의 소리에 익숙해져 있음을 알았다.

 

- 이런 자극의 결과로, 나는 한국전쟁에 기여한 Alfred와 우리 가족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그리고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의 질문에 대한 이해의 표시로 초상화를 창작하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어떤 측면에서는, 그것이 우리 행위의 총 집약이라는 것과, 과거는 우리의 행위가 미래에 의미할 지도 모르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resident I.C.C Australia

I love Korea

 

 Through the I.C.C. exchange, Korean artists visited Australia, and Australian artists visited Korea. The Australians enjoyed Korea’s modern friendly culture, and much time was spent trying different foods, attending workshops and lectures, as well as developing a substantial exhibition. Here I would like to introduce one of the featured Australian artists, Michaela Kloeckner         I.C.C국제교류로 2007년 1월엔 한국작가들이 호주를 방문했고, 6월엔 호주작가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한 호주인들은 전통과 현대, 그리고 한국인의 친절함과 색다른 음식 맛에 모두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 머물던 기간동안 수준 높은 작품전시는 물론 여러 차례의 워크샵과 특강으로 소중한 시간을 함께했다.  이곳엔 호주작가 ‘미카엘라 클로크너’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는다.

LOTUS DREAMING 연꽃 꿈     At Hahoe Folk Village in Andong 안동하회마을에서...

What a wonderful experience it was to walk along a vast field of Lotus flowers!

연꽃이 만발한 광활한 들판을 따라 걸었던 것은 얼마나 멋진 경험인가!

 

 

 

 

 

 

 미카엘라 클로크너 MICHAELA  KLOECKNER (Born in Oberammergau, Germany - Australian)

 

 나는 한국을 사랑 한다

  I love Korea, hand built porcelain, 48x45x3cm,

 

   I knew nothing about Korea, I was so surprised by Korea's wonderful ancient culture and the rich traditional heritage, the modern lifestyle and the fantastic contemporary art, the delicious food, the tasty Soju and the heart-warming hospitality of very kind and beautiful people. How can I communicate my experiences without a common language but with the universal language of art?

  I LOVE KOREA   Dinner Set, hand built and hand painted porcelain-Celebrating the many enjoyable hours of sharing food and Soju with my Korean artist friends!

  작품세계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훌륭한 고대문명과  풍성한 전통 유산, 현대적 삶의 양식과 환상적인 현대미술, 맛있는 음식, 감칠맛 나는 소주 그리고  너무나 친절하고 아름다운 한국 사람들의 인정어린 환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내가 이러한 경험들을 일상의 언어가 아닌 미술이라는 총체적 언어로 나눌 수 있을까?


  나는 한국을 사랑 한다  디너 세트,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칠한 기념축하용 도자기, 나의 한국인 친구 화가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소주를 마시며 나누었던 즐거웠던 많은 시간들!

 

 

배소영(裵昭榮) SO YOUNG BAE   (Korean)

 

 

 

 빅토리아 폭포 Victoria Falls, 65x50cm, Oils, 2006

 

 "Victoria Falls"

Spray of water rumbling the axis of the earth

Mosioa Tunya

Smoke producing thundering noise


Zambezi River, 1,500m width, 150m heights,

Shakes our soul,

By discharging its 8,000t of water per second.


Trees, weeds,

All the animals,

Natives, visitors,

And the statue of David Living Stone,

All are shaken with the earth's axis.


Only one, not waving

Several rainbows,

Are in the sky.

"빅토리아 폭포"

 지축을 울리는 물보라

  모시오아 투냐(Mosioa Tunya)  

  굉음을 내는 연기


  Zambezi River는

  넓이 1,500m,  높이 150m

  초당 8000t 방유량으로

  우리의 혼을 흔든다.


  나무도 풀도

  모든 짐승들도

  원주민들도 관광객들도

  David Living Stone 동상도

  지축과 함께

  혼들이 흔들린다.


  오직 흔들리지 않은 것은

  곳곳에 떠있는

  무지개 들 뿐

 

 

라이언 맥레이 RYAN MCLAY   (Born in Leduc, Alberta - Canadian)

 

 

 

 

 

 

 

 

거리에서 Engorean - on the street

 

 

  Engorean What I want to do for the exhibition is present my version of "Konglish". I have only been here for two months and I can't help but noticing seeing all these English speaking t-shirt. Another thing I noticed were couple clothes. I find this very interesting. I would like to create my own version of the whole Konglish couple t-shirt's thing. I want to invent a T-shirt called Engorean. I want to create two t-shirts that would be worn on male and female manikins. On the back of the t-shirts I want to find random Korean iconographies with random Korean words printed on them.

 앵고리언  내가 전시회에서 하고 싶은 것은 내 나름의 해석으로 ‘콩글리쉬’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이곳 한국에서 지냈을 뿐인데 나는 영어로 쓰여진 티셔츠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눈길을 끌었던 또 다른 것은 커플 티였다. 이것은 매우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내가 이 전시회에서 하고 싶은 것은 ‘콩글리쉬’로 된 모든 커플 티셔츠에 적힌 것들을 나 자신의 해석으로 창작하는 것이다. 나는 ‘앵고리언’이라고 불리는 티셔츠를 중요하게 다루고 싶다. 나는 두 남녀의 마네킹에게 입힐 두벌의 티셔츠를 만들고 싶다. 티셔츠의 뒷부분에 인쇄되어있는 무작위의 한국 단어로 무작위 한국의 성상을 발견하고 싶다.

 

 Ryan McLay : Engorean Taken Onto The Streets

 라이언 맥레이 : 거리로 나아간 영어식 한국어

 

  Well to talk a little about myself I have to ask where I start. I guess I can start where I grew up. From an early are I was always moving around from place to place. It seems that every three years we moved somewhere. I was born in a small town called Leduc which was just outside of Edmonton, Alberta. The only claim to fame this town had  was it is the first oil refinery in Canada. I was only there for one year then we all moved from Alberta to Southern Ontario. From age two to seventeen we moved from small town to the country side.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추측컨대 내가 성장한 장소에서 출발하면 될 것 같다. 일찍부터 나는 항상 이곳저곳으로 자주 이사를 했다. 3년에 한번 꼴로 어딘가로 이사를 했던 것 같다. 나는 Alberta의 Edmonton의 근교에 있는 Leduc이라고 불리는 조그만 시에서 태어났다. 이 시가 유명하게 된 유일한 이유는 캐나다에서는 첫 번째로 그곳에 석유 정유소를 세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는 단지 1년을 살았고, 그 후 우리가족 모두는 Alberta에서 남부 Ontario(Southern Ontario)로 이사했다. 2살부터 17살 때까지 우리는 그 작은 시에서 이사해 시골지방에서 살았다.

  At seventeen my mother and I decide to move back to Alberta and try the city life in Calgary. To give a little info on the city of Calgary is one of the richest and one of the most conservative places of Canada. So when I finished Art College in 2002 I had to get out. I decided to start a studio with my best friend Ryan Legasicke in Toronto. Toronto was like night and day to Calgary. More open-minded people and more things to do and see. I spent five trying to survive as an artist in Toronto. I was in a bunch of exhibitions in and around the Toronto area. While living in Toronto I was trying to be more evolved with the public. I introduced a monthly event at a one of Toronto’s landmarks The Gladstone Hotel called "Artist Trading Cards".  To sum up this project in one sentence it’s a baseball card format artwork that is traded with artist and non-artists to build an informal exchange of ideas.    17살 때 나의 어머니와 나는 Alberta로 다시 돌아가, Calgary시에서 생활하려고 애썼다. Calgary시에 대한 정보를 약간 제공하자면, 그곳은 캐나다에서 가장 풍요로우면서 보수적인 곳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2002년 예술대학을 졸업했을 때, 나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나는 Toronto에 살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인 Ryan Legasicke과 함께 스튜디오를 시작할 것을 결정했다. 토론토의 일상은 Calgary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곳은 개방화된 사람들이 더 많았고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토론토에 있는 화가로 남기를 애쓰면서 5년을 보냈다. 나는 토론토 지역 내에서와 근처에 있는 지역에서 많은 전시회를 가졌다. 토론토에서 사는 동안 나는 일반대중들과 더 많이 접촉하려고 애썼다. 나는 토론토의 역사적인 건물인 “Artist Trading Cards”라고 불리는 Gladstone Hotel(글래드스톤 호텔)의 한 곳에서 월간 이벤트를 선보였다. 이 프로잭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비공식적인 아이디어 교류를 정립하기 위해 예술가와 비예술가 사이에 교환되는 야구 카드 형식의 예술품이다.

  While living in Toronto I was working at a factory in order to pay the bills. The constant interaction with people of different ethnic backgrounds I became more and more interested in seeing other cultures and how they daily life. This influence ended up into my art projects. I like interacting with the public and I like to take my artwork out of the gallery setting and into the streets. I like the common people to see my art work not a selected few. After a few month of research trying to find a new job I decided to leave Toronto and see what the world had to offer.   토론토에서 살았을 때, 나는 빚을 갚기 위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른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계속되는 상호작용으로 나는 점점 더 다른 문화들과 그 문화들이 날마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를 바라보는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결국 나의 미술 프로잭트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나는 일반대중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좋아했고,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나의 작품을 거리로 가져가 전시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선별된 특정 소수가 아닌 일반대중들이 나의 작품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한 몇 달의 조사 끝에 나는 토론토를 떠나 이 세상이 제공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I made my decision on Korea. I had a friend in Toronto that was Korean and she told me the benefits of living in Korea. Seoul being larger and a more international city, I though I would get a better chance of exposure there. Another reason why I moved to Korea is to learn more about Zen Buddhism. I was reading a lot about it in Toronto and I thought I should go right to the source.      나는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토론토에 한국인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의 이점들을 말해주었다. 서울은 더 큰 국제적인 도시가 되었기 때문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가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는 선불교(Zen Buddhism)에 관해서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토론토에서 선불교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고 있었고, 그래서 그 선종의 발생지로 당장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I got a job teaching English at YesYoungdo academy and have been there three months now. I was interested in teaching, to learn how to better interact with people. Since I’ve been here, I take short trips every other weekend to see what Korea has to offer. My first trip was to Gyeongju and I was amazed by the beauty and the history.    나는 예스영도학원(YesYoungdo Academy)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고, 지금 이곳에서 3개월 동안 지내고 있다. 내가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사람들과 더 나은 상호작용을 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 지낸 이래로, 격주로 나는 한국을 알기 위해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했다. 나의 첫 번째 여행지는 경주였고 나는 그곳의 아름다움과 역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After Gyeongju I went and checked out Busan and I there I discovered the local art scene. There is where  I was introduced to fellow exhibiting artist Katrina Baran. She told me about this show that Chang Han was putting together in Ulsan and I should apply. At first I was a little hesitant because I just moved to Korea and I didn’t know what new work I would make.   경주를 여행한 후에 나는 부산에 갔고, 그리고 거기에서 지역미술전시장을  발견했다. 그곳은 내가 화가인 Katrina Baran(카트리나 바란)이 전시회를 가질 수 있도록 친구에게 소개받은 바로 그곳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김창한 화백이 울산에서 합류하고 있고 내가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단지 여행을 목적으로 한국에 온 나로서는 어떤 새로운 작품을 제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약간 망설였다.

  Then I hit me. Every Saturday I take the subway from Anyang to Seoul and to the Zen Temple. It normally takes me about one hour to get there, so I’m stuck on the train with nothing to do. So what I do to kill time is I people watch. The more I looked at a people the more I noticed trends and patterns.     그때 나의 뇌리를 스친 것이 있었다. 토요일마다 나는 안양에서 서울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선종 사찰(Zen Temple)에 갔다. 그곳까지 가는 데는 보통 1시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그 시간동안 소일거리로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주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나는 그들의 패션경향과 패턴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Two things that caught my eye were couple clothes and Konglish writing. This was completely foreign to me. At that moment I knew what I wanted to do for this exhibition. For this exhibition I wanted to create my own version of the Konglish couples clothes.     내 눈을 사로잡았던 두 가지는 커플 티와 한국식 영어(Konglish) 형식으로 쓴 글귀들이었다. 이것은 내게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 순간에 나는 내가 이 전시회에서 하고 싶었던 것을 알았다. 이 전시회를 위해 나는 한국식 영어(Konglish) 형식으로 쓰여진 커플 티를 내 자신의 생각대로 그려내고 싶었다.

   I wanted the viewer to participate with my artwork by buying the t-shirts that I created and take them onto the streets. I want to see if they get same reaction that I do when I see Konglish shirts that don’t make any sense to me. What I’m putting on these shirts are random Korean words with random Korean iconographies. The idea of making a couple set t-shirts is to make them stick out more in public.     나는 관람객들이 내가 만든 티셔츠를 사서 거리를 활보함으로써 나의 예술작품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내가 한국식 영어로 된 셔츠를 보았을 때 어리둥절했었던 것과 같은 반응을 그들이 보일지 어떨지 알고 싶다. 내가 이 셔츠에 나타내고 싶은 것은 무작위로 선별된 한국 도해법을 사용해서 무작위로 선별한 한국어이다. 커플 티셔츠 세트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그것들을 좀 더 공개적으로 두드러지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팜 월포올 PAM WALPOLE  (Born in Nhill, Victoria, Australia - Australian)

 

   Dragonfly and Water-bird, 106x45.5cm, Acrylic, 2007

  The best thing about my experience in beautiful Korea is the interaction with the people I've met. They are so thoughtful, considerate and friendly  how can I paint that? I am a landscape painter and I love the green countryside in summer - orchards of fruit trees - ponds of water lilies - forests of trees - bamboo and patterns of rice fields. These paintings are about the dragonfly that hovers over the water and the water bird searching for food in the rice fields. I also am attracted to the roof and fences of the traditional style buildings. I will paint these also one day. 아름다운 한국에서 내가 경험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상호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그들은 아주 사색적이고, 사려 깊으며 친절한 사람들인데, 내가 그들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풍경 화가이기 때문에 여름의 푸른 시골지방을 사랑 한다 - 그곳에는 유실수가 풍성한 과수원, 수련이 만발한 연못들, 대나무 숲과 다양한 형태의 논밭이 있다. 이 그림들은 물위를 배회하는 잠자리와 논밭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물새에 대한 것이다. 또한 나는 전통 방식으로 지은 가옥의 지붕과 담장에 매력을 느낀다. 나는 또한 언젠가 이것들을 그릴 것이다.

 

저드슨 채트필드 JUDSON CHATFIELD (Born in Auckland, New Zealand - Australian)

 

 

 

 

 

 

 

  

 

 

 

 

 

A Fine Balance

Height 1360mm(Base 310x310mm), Tallow wood and aluminum,

 

  Throughout the time I spent in Korea I was constantly reminded of the interplay between the traditional base of Korean society in all aspects of daily life, family, spiritual, social and work. The constant balance that is required between old and new, technology and tradition, harmony and summitry in all things as an ideal. I was struck by impression of harmonies balance and how better to portray this than the acrobats, tradition supporting the emerging, neither being able to without the other. I enjoyed the busyness, the creative chaos, the constant activity and the energy of a vibrant people.   한국에서 지내온 시간을 통해 나는 일상생활의 모든 양상에서 정신적, 사회적으로 한국의 전통적 근간이 되어왔던 가족과 직업 사이에서 계속적으로 상호작용했던 것을 떠올렸다. 옛것과 새것, 기교와 전통, 하나의 전형으로서 모든 것에 조화를 이루는 것과 선두에 서고자 하는 갈망 사이에 계속적인 균형이 요구되어지고 있다. 나는 균형 잡힌 조화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 드러난 것을 지지해주는 전통을 갑작스럽게 변화시키기 보다는 -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것도 존재할 수 없기에 - 분주함이나 창조적인 혼돈, 활기찬 사람들의 계속적인 활동과 활력을 맛보면서, 그것을 묘사하는 일에 훨씬 더 관심을 기울였다.

 

케이트 콜맥 CATE CORMACE  (Born in the United States - Australian)

 

 

 

 

 

 

 

 

 

 

The Impossible Harmony

76cmx57cm, watercolor & pastel, 2007

 

   In Korea agriculture, industry, cities, nature and history weave a tapestry across the landscape. When I visited, I experienced fast, modern, technological efficiency; yet behind it’s skyscrapers was the astonishing beauty and depth of ancient Korea, its architecture and culture. In this painting the ancient temples glow above the weave of agriculture and industry as they meet the sea. These visual elements inspired me in Korea and the Korean

people won my heart!   한국에서 농업, 산업, 도시들, 자연과 역사는 풍경의 개념을 넘어 테피스트리로 짜놓은 것 같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렇게 빠르고 현대적이며 기술적인 효과를 경험했다; 하지만 그 초고층 빌딩 뒤에는 고대 한국의 건축과 문화의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깊이가 있었다. 이 그림에서 오래된 사찰들은 바다와 접하면서, 농업과 산업이라는 짜임새 위에서 빛나고 있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게서 나는 이러한 시각적 요소들의 영감을 받았다.

 

페널롭 제인 톰슨 PENELOPE JANE THOMPSON (Born in Wagga, NSW, Australia - Australian/UK)

   

Website: http://penelopethompson.com       Blogsite: http://penelopethompson.blogspot.com

   Although I was born and raised in rural Australia, I have had a longstanding interest in Asian culture and philosophy. Now that I have lived in Korea for five years my work has been deeply influenced by Korean culture in particular. I find the contrasts between the ancient traditions and the bustling industrialised modern lifestyle to be a rich ground for artistic inspiration.   비록 호주의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지만, 예전부터 나는 아시아의 문화와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5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특별히 한국 문화는 나의 작품에 깊은 영향력을 끼쳤다. 나는 예술적 영감의 풍성한 토대가 되는 고대의 전통과 바쁘게 살아가는 산업화된 현대 삶의 양식 사이의 현저한 차이점을 찾고 있다.

 

 리아 브로드비   LEAH BROADBY (Born in Hobart, Tasmania, Australia - Australian)

 

 

 

Woman of Two Lands

160cm x 50cm, Acrylic on canvas

 

   Explanatory note for the exhibition  For me, coming to Korea was another way of stepping outside the boundaries of normal reality.  I am not just a traveler here, but immersed in Korean culture, Korean city and married to a Korean man.  This has required a difficult, exciting and joyous transition (a transition whose end I'm sure I'll never see!)It is this transition I have expressed in my paintings.    전시작품을 위한 노트 나에게 있어서 한국 방문은 일상생활이라는 영역에서 바깥세상으로 한걸음 발을 내딛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나는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니라, 한국 문화, 한국의 도시에 매료되어 한국남자와 결혼한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힘들지만 흥분되고 즐거운 변화(확신컨대 그건 내가 결코 다시 맛볼 수 없는 변화!)를 나에게 요구해왔다. 나의 화폭에서 표현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변화였다.

 

카트리나 배런 KATRINA BARAN  (Born in Toronto, Canada - Canadian)

 

 

 

 

 

 

 Cycling through the countryside offers a unique view of Korea. I am constantly happening upon pockets of beauty – in both landscape and atmosphere. All photographs I am exhibiting in this show were taken while cycling in Ulsan, Gyeongju and surrounding areas. Through these photographs, I wish to show some of the details of this country that make it so very intriguing and beautiful to me – details that are often taken for granted by those travelling at a quicker pace.   자전거를 타고 시골근교를 두루 여행한 것은 나에게 한국에 대한 독특한 일견을 제공해 주었다. 나는 계속적으로 이런 아름다운 장소들 - 풍경과 분위기 둘 다에 있어서 - 을 우연히 만나고 있다. 내가 이번 전시회에서 다루는 모든 사진들은 울산, 경주와 인근주변 지역들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동안 찍은 것들이다. 나는 이 사진들을 통해서 너무나 흥미로웠고 아름답게 보였던 이 지역들의 세밀한 부분들 - 종종 마음의 여유 없이 빠른 걸음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부분들 - 을 보여주고 싶다.

   

  가렛 코플리 GARETH COPLEY  (Born in Manchester, England - United Kingdon)

 

   Korean Impressions  The aim of this exhibition is to show the immense natural beauty of Korea and the rich culture which I have encountered in this country. I want to show how the people of Korea and the guests who are welcomed so readily, view the landscape. This includes both the geographical and the social landscapes. In doing so, the gaps that all too often exist between how people view themselves and how others view them, may be overcome.    한국의 감흥  이 전시회의 목적은 내가 이곳 한국에서 접했던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운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과 방문객들이 어떻게 그 풍경을 관망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은데, 이 풍경은 지형적이고 사회적인 풍경 둘 다를 포함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종 사람들이 그들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와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떻게 그들을 보는가의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갭이 극복될 지도 모른다.

 

 케빈 요셉 포프 KEVIN JOSEPH POPE  (Born in Syracuse, New York - American)

 

 

 

Mmmm! What's this ?

(My son Daniel inspecting the Gochujang from Grandma's House in Jecheon.)

 

  I have lived in Korea over ten years. I thoroughly enjoy going to the out of the way places in Korea. When I am visiting sites in Korea I try to take photos of hidden or looked over things. The colorful and intricate designs under the eaves of the temples are stunning. The misty fog over the rocky mountain ranges is breathtaking. Of course one can not go to Korea with out savoring the delicacy of Korean foods. The taste and aroma are most difficult to capture on film. I try very hard though.   나는 10년을 넘게 한국에서 살아왔다. 나는 한국의 외진 장소들을 다니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한국의 여러 지역들을 방문할 때 나는 숨겨져 있는 사물들, 혹은 저 너머에 내려다보이는 것들을  필름에 담으려고 시도한다. 화려하고 섬세한 자태로 사찰에 새겨진 디자인은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바위가 무성한 산맥들 너머로 보이는 자욱한 안개는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감칠맛 나는 한국음식을 꼭 맛보아야만 한다. 그 맛과 향을 필름에 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다. 비록 어렵겠지만 나는 열심히 시도하고 있다.

 

 

 

 

김천배(金千培) CHEON BAE KIM (Korean)

 

 

보라카이 해변 Borakai Beach

53x40.9cm, Oils on canvas, 2007

 

   Borakai Beach :   I especially like the sea because of growing up in a village near the seashore. Borakai Beach in the Philippines is called one of the four most beautiful beaches in the world. It dazzled my eyes with its great beauty. There is a harmony with the emerald-colored sea, white beaches and coconut palms. There are other fantastic beauties that could be compared to my home. Though I have visited that place several times, my heart is beating whenever I think of the beach.     보라카이 해변 :    바닷가에서 자라서 그런지 유독바다를 좋아한다.    필리핀 보라카이 해변은 세계4대 해변으로 불려질 만큼 아름답다 못해 눈이 시리다.  에메랄드빛 바다, 화이트 비치와 야자수가 어우려져 우리바다 풍경과는 전혀  다른 환상적이다. 몇 번 다녀왔지만 지금도 그곳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홍수지(洪秀知) SOO JI HONG (Korean)

 

 

 명사산(鳴沙山) Mingsha Shan

 30×30cm, paint on Koran Paper, 2007

 

  When I had arrived at Tunhuang to go on the Silk Road in 2005, I saw a boundless vista of desert and wilderness. It looked like an endless way to go with no clouds in the sky for one whole day since the sun rose up in the morning. The desert I never saw before, had been changed on the windy side. I wish you could see that the desert never changed, but it did.   2005년 실크로드를 가기위해 돈황에 도착 했을 때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과 황야를 보았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고,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에 질 때까지 구름 한 점 없었다.  처음 본 사막은 바람만 불면 모양이 변했다.  나는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사막을 보여주고 싶다.

 

 

박상호(朴相鎬)   SANG HO PARK  (Korean)

 

 

 중국의 계림 Gaelim in China

 45×34cm, water color, 2007

 

   Gaelim in China I traveled to Gaelim, China in August 2006. Gaelim was a paradise itself made by God. The landscape of Gaelim seen from a plane was like formative arts. I painted the landscape of Gyerim on a drawing pad with an on-the-spot sketch. On the basis of it, I expressed the limited lines with India ink and the beauty of blank space with light-and-shade, and the powerful vitality of strong handwriting.    중국의 계림   2006년 8월 중국 계림을 여행하였다. 그곳 계림은 신이 내려준  자연이었다.  비행기에서부터 내려다 본 계림의 산수는 천하제일의 조형물 이었다 . 나는 그 계림의  산수를  현장 스케치로 화첩에 그렸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수묵으로  절제된 선과  농담으로 여백의 미와 기운생동의 필력으로 표현 하였다.

 

 

 

권기철(權基喆) KI CHUL KWON (Korean)

 

 

무제 Untitled

53x91cm, mixed media on Korean paper, 2007

 

  5 pm, New Delhi, 2005, the sunshine of July is pouring somewhat fishily. It burns the back black. Oily beads of sweat, which tangle between hairs, drop to the end of the nose. The palm of the hand wipes them off continually. This weather is adequate to calm down the high  temperature and humidity and the quick temper of subtropical zones. Impure air, as if it ordered to 'move slowly' makes me feel stuffy.     2005년 뉴델리 오후 다섯 시, 칠월의 태양이 비릿하게 쏟아진다. 까맣게 등가죽을 태운다. 머리카락 사이에 엉켜있던 끈적끈적한 땀방울이 코끝으로 떨어진다.  손바닥은 연신 그것을 훔쳐낸다. 아열대의 고온다습, 조급증을 토닥거리기에는 충분한 날씨다. ‘느리게 움직일 것’을 주문하듯 탁한 공기는 숨을 턱턱 가로막는다.

 

 

 

손 파(孫破) Paa Sohn  (Korean)

 

 

고요함속의 움직임 Moving of silence

60×145cm, 타이어튜브, 2007

 

  Moving of Silence  After traveling to France, Germany and Austria, I received a strong impression that those countries were free and open, but had a strict order and restriction of action. It felt as if a certain kind of giant machine moved around, each tiny part being in gear with each other so that social movement was made to be active and positive. But at the same time, I also felt the surveillance of something invisible and a control accompanied with a chilling feeling like cold ice. I compared it with an active artificial substance, that I called "tire tube", and expressed its role of preventing and supporting by manipulating a tube. I combined and expressed mutual entangled moments of the history of mankind with only one motive.    고요함속의 움직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를 여행한 후 자유롭고 개방적이나 엄격한 질서와 행동의 제약이 있음을 느껴졌다. 그것은 거대한 기계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활동적이며 적극적인 사회 움직임이 인상적 이였으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감시와 통제가 차가운 얼음 같은 오싹함을 동반하고 있었다. 난 그것을 타이어 튜브라는 활동적인 인공물에 비유하였고 그것을 감싸고 지지해주는 역할을 튜브를 엮어서 나타내었다. 서로서로 얽힌 인간사의 순간들을 하나의 모티브로 결합하고 표현했다.

 

 

김동인(金東仁) DONG IN KIM (Korean)

 

 

알산의 여름 Alsan in summer

30x120cm, Acrylic on Canvas, 2007

 

 The summer of Alsan  August, 2001... at the height of the hot summer weather, the train carrying us was running towards Alsan, the Inner Mongolian self-governing dominion of China.   Even though the awful rising and falling, and the sultry heat of 40°C made us very tired and irritable, seeing the landscapes of Alsan from inside the train, will remain in our hearts.    알산의 여름   2001년 8월.....여름 더위가 한창일 때 우리는 기차를 타고 중국의 내몽고  자치구의 알산을 달리고 있었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는 우리들 일행을 무척이나 지치고 힘들게 했지만   기차 안에서 내다 본 알산의 풍경은 지금도 우리들 가슴에 시원하게 남아있다.

 

 

 

서경희(徐京希) KYUNG HEE SEO (Korean)

 

 

콜로세움의 기억 Memory of the Colosseum

72.7x60.6cm, mixed media, 2007 

 

   The Colosseum, which is a symbol of Rome, is the largest historic site of ancient Rome. It is Coloss대 in Italian and its official name is Flavius Amphitheater. Going to the Coliseum, I get overwhelmed with deep emotion by the images that I saw through films or literature (gladiators, beasts, etc.) on the street, and the scenery of Rome out of a window. At the moment I'm standing in front of this old site of an overwhelming scale, I can imagine that I am a spectator of that age, the Chariot wheels are rolling, and the battle cries are raising. I will keep that scene in my eyes and heart, and remember them for a long time.    콜로세움  로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의 유적지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이태리어로는 끌로세오(Colosseo)라 한다.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 극장이다.   콜로세움으로 향하며 검투사의 경기, 맹수와의 싸움 등 영화나 문학 작품을 통해 접해 왔던 이미지와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로마의 거리 풍경이 오버랩되어 가슴 벅찬 감격이 밀려왔다. 압도하는 스케일의 고적(古跡) 앞에 선 순간, 시대의 흐름을 다시 되 돌려 그 시대의 한 사람 관객이 된 듯 전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 함성이 내 귓가를 울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 현장들을 눈과 가슴에 담고 오래오래 기억하리라.

 

 

최명영(崔明榮)  MYOUNG YEONG CHOI (Korean)

 

 

활화산 The Active Volcano, 53×40.9cm, 2007 

 

  The active volcano   This is a scene of a quiet farmhouse on the way to Aso. The mountain far away still has volcanic activity so there are trees here and there, which is well harmonized with the sunlight. It is as beautiful as it is decorated.    활화산  아소로 가는 도중의 한적한 농가의 풍경이다. 멀리 보이는 산이 화산 활동이 아직 진행 중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나무들이 자라지 않아 햇빛과 어울려 산을 꾸며 놓은 듯 아름답다.

 

 

 

김이평(金理坪)  YI PYUNG KIM (Korean)

 

 

거미 Spider

39.6×79.5cm, Reactive Dye, Digital Print on Silk, 2005

 

    Spider Since 1996, I was interested in patchwork technique which cut and set pieces of various patterned cloth and composed a screen. However, because of the physical limitation of this traditional technique, I couldn't be satisfied with my formative detail. For several years after that, digital techniques were developed quickly, so physical problems that I had could be solved.

   "Spider" - Even though you want to remove a complicated concept, it is still visible in a complex screen. One of my experimental series focuses on the visible situation. These ideas were what I emphasized when I held a private exhibition in the Portland Gallery 7126 of Oregon, America in 2005.

   In "Spider", I retained a visible structure only to join and set colorful pieces of cloth, removing the story or philosophical concept of the work. I used a plain composition of inanimate objects as a medium, which a certain kind of conceptual element couldn't fit into. Still I am sure, viewers will try to find definitive conceptual elements in my screen.

    거미   1996년 이후, 나는 갖가지 무늬의 천 조각을 적당히 오려붙여 하나의 화면을 구성하는 패치워크 테크닉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물리적인 한계를 가지는 이 전통적인 테크닉은 나의 조형적 디테일을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이후 수 년간 디지털 기술이 재빠르게! 발전하면서 물리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거미”는 시각적으로 복잡해 보이는 화면에서는 복잡한 개념을 제거하여도 여전히 복잡한 개념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강조하려한 일련의 실험적 연작중 하나이다. 이러한 생각은 2005년 미국 Oregon주 Portland의 Gallery 7126에서 개인전을 열 때 강조했던 개념이다.

    “거미”에서는 작품에서 스토리나 철학적인 개념을 제거하고, 단지 알록달록한 천 조각을 이어붙인 것과 같은 시각적 구조만을 남겼다. 다른 어떤 개념적 요소가 끼어들 수 없는 평범한 정물의 구도를 소재로 사용하였으나, 관객들은 나의 화면에서 개념적 요소를 발견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정기홍(鄭基弘) GI HONG JEONG (Korean)

 

 

쓰촨성(四川城) 충칭의 무희(舞姬) A dancing girl of Chongqing, Sichuan-Sung,

50×30×50cm, mixed media, 2007

 

   A Dancing Girl of Chongqing, Sichuan-Sung I visited South-Western China’s, Chongqing, located south of Sichuan, in the upper region of the Yangtze-River. It is also called 'San-Chung', a name when translated refers to the many houses standing in a continuous row on the slope of a mountain. This highly productive industrial center is a hub of transportation by both land and sea. It is a dynamic city where traditional and modern ways are crossed with the extensive continent of China as a backdrop. During my stay, I was awestruck when a group of dancing girls caught my eye. Their frolicking bodies etched graceful patterns in my mind, and their mingled hair flew in the waves of the wind.  It was a youthful awakening.    충칭의 무희 중국 남서부 양쯔강[揚子江] 상류지역 쓰촨성(四川省사천성, Sichuan)에 위치한 충칭(重慶중경, Chongqing)을 방문했다. 산이 많아 산비탈에 가옥이 즐비하여 '산청(山城)'이라고도 부르는 이곳, 중국의 수상수송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수륙교통의 중심으로서 각종 물산의 집산지이며 중국 남서부 최대의 공업기지를 형성하고 있다. 광할한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전통과 현대가 교차되는 역동의 도시를 탐방하고 있을 때 문득 내 두 눈을 사로잡은 거의 무희(舞姬)들이 있었다. 온몸에 각종 문양들을 새기고 헝크러진 머릿결을 바람결에 흩날리며 온몸으로 연출하던 여인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승우(李承優) SEUNG WOO LEE (Korean)

 

 

심해 The deep sea, 54.5cm×39cm, Acrylic, 2007

  The main flow of my works lies at the root of nature. One clump of grass is considered nature, and the wonder of the deep ocean and the circulation and system of the universe are yet to be considered nature also.  As we step towards the future, the theory of crisis in nature is spreading across the world. Perspectives, which are easily seen from some science fiction films, are not likely to occur. The change of the universe, however, is starting to appear on the surface at lightning speed. In this work, with the inspiration I had from my trip to Japan and the Philippines 10 years ago, I try to convey the systematic order of the universe and nature, which lurks within the mysterious.     나의 작품세계의 큰 흐름은 자연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풀 한포기도 자연이지만 깊은 바다의 신비도, 우주의 순환도 질서도 자연이다. 21세기는 자연에 대한 위기론의 확산되고 있다. S.F영화 같은 상황이야 일어나지 않겠지만 우주의 변화는 급속도로 변화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0여년전 일본과 필리핀을 여행할 때 계기가 되어 자연을 대상으로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신비로운 질서 싸이클을 통해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이향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명숙(李明淑) MYUNG SUK LEE (Korean)

 

 

또 다른 울산 이야기 Another Story of Ulsan, 90×45cm, Mixed Media, 2007

 

   When you drive a car about an hour from downtown Ulan-Bator, Mongolia, you can see a park with a river; a very rare sight.  When you pass the river, riding a camel, you can also see tall trees similar to bamboo, and the course of the river winds along, round and round. It reminds me of the road of 'Sip-Ri bamboo grove'. Someone said that the beautiful color of nature was the reason for the fresh air, - after visiting Ulan-Bator.      몽고의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리다보면   귀하게 강이 있는 공원이 나온다.    낙타를 타고 강을 지나노라면 대나무와 흡사하게 쭈~욱 뻗은 나무들과   굽이 돌아가는 강물의 줄기가 울산의 십리 대밭  길을 연상케 한다.     자연의 아름다운 색은 맑은 공기 탓이라고 했었다  - 울란바토르를 다녀와서

 

   

김정애(金貞愛)  JEONG AE KIM (Korean)

 

 

아름다운 시드니 항구  Beautiful Sydney Harbor, 72.7×50cm, Oils canvas, 2007

 

   Beautiful Sydney Harbor The appearance of many yachts sails waving in a wispy breeze with the daybreak is a very peaceful scene.  I greet the morning in Sydney Harbor of Australia similarly to that at a beautiful lake, as if people feel comfortable psychologically when they stay together with nature. I have beautiful memories of Sydney Harbor. September 2005.   아름다운 시드니 항구 빽빽하게 들어선 요트의 돛이 새벽의 여명과 함께 실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이 매우 평화롭다. 사람은 자연과 함께할 때 심리적으로 가장 편안함을 느끼듯 마치 아름다운 호숫가를 연상케 하는 호주의 시드니 항에서 아침을 맞이하다. 아름다운 추억들과 함께.....  2005년 9월 시드니항에서  

 

 

박준영(朴俊暎)  JOON YOUNG PARK(Korean)

 

 

벚꽃-홋카이도 A Cherry Blooms in Hokhaido, 53x33.4cm, Oils, 2007

 

   A Cherry Blooms in Hokhaido  Traveling is very pleasant experience. The travel through Hokkaido, Japan started by visiting an art center earlier in April of this year. The camellia overcame a cold winter, and bloomed on light green leaves with a resilient passion. How happy I am to see a gently bloomed passion... Travel is another journey, on which I leave to find myself.    벚꽃 - 홋카이도  여행을 한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일본 홋카이도로의 여행은 올해 4월 미술관 관람을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겨울 끝자락에서 만난 벚꽃은 차가운 겨울을 뒤로하고 연푸른색 바탕위 새초롬한 열정으로 솟아있다. 이렇듯 소롯이 피어난 열정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여행은 나를 찾아 떠나는 또 하나의 여정인 것이다.

 

 

손돈호(孫敦鎬) DON HO SON (Korean)

 

 

홋카이도오 오따루에서, 2F

 

  If there is a full leap of the heart in a leaving soul,

                  an impression grows fully in your heart, and when you come back

                  it comes to life with a fresh energy for living tomorrow....

                  And today, a traveler of the road discovers himself in his footprint,

                  Lifting his head and seeing a shadow in the sky. 

   떠나는 마음속에 가득한 설래임이 있다면 돌아올 때 가슴속에 가득히 밀려오는

            감동은 내일을 살아가는 신선한 에너지로 살아나고....

            오늘도 길위의 나그네는 발자국에서 그림자 속에서 고개들어 하늘을 보며   스스로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