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14년에 씀  ===========================================================

 

작 품 세 계

 

내 그림은 현장사생을 바탕으로 살아 숨쉬는 자연의 순환(循環)을 담는다. 사계절의 변화무쌍하고 신비로운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이상향을 그리는 것이다.

 

 

바다 - 찬란한 생명의 환희

해 뜨는 동해바다 : ‘일출’ 그림에선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느낀 가슴 뭉클한 삶의 희망과 기쁨을 나타내고자 했다. 이른 아침 간절곳/명선도(울산)은 일출과 함께 수평선 위에 떠있는 어선들과 산업도시의 공단을 분주히 오가는 대형 선박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렇게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겨울바다 : 매서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여명(黎明)이 찾아올 때, 포효하는 듯 거센 파도가 바위에 미친 듯 부서지면서 오만가지 색상이 터져 나올 때의 감동과 희열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황홀경의 극치이다. 일출/파도를 통한 삶의 유토피아(Utopia 이상향)를 향한 간절함일 것 같다. 그리고 매년 그곳을 찾을 때마다 작품의 조형적인 관심은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 더욱 힘찬 에너지의 근원을 찾아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듯싶다.

눈 오는 겨울바다 : 지난겨울부터 새롭게 시도한 것으로 바다에 대한 새로운 감동을 담고자 했다. 또한 겨울바다에서 매화시리즈로 연결되는 색다른 설렘과 신비스런 아름다움을 갖게 한다.

 

서핑 : 서핑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강한 생명의 전율이 느껴진다.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싣고 신나게 파도 타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후련하고 통쾌하다. 우리들 삶도 저 멋진 설퍼와 같았으면 좋겠다. 현장에서 작업 할 때 누군가 내 그림을 보면서 “파도가 미친 듯 몰려오고 있네요.”라고 했다. 밀려오는 파도는 늘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특히, 미친 듯 밀려오는 짙푸른 성난 파도를 볼 때면. 대자연(大自然)의 살아 숨쉬는 생명의 고동이 느껴진다.

서핑은 내가 15년간 그려온 ‘사과나무’ 시리즈와 매우 유사하다. 한여름 뜨거운 뙤약볕을 받으며 익어가는 풋사과의 싱그럽고 강한 생명력과 사과 나뭇잎이 파도치듯 넘실거리며 전율하는 아름다움을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면서 캔버스에 담았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매화(梅花)

본인의 매화 그림은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군자(君子)의 절제된 정신세계와 한국적 정서가 담겨있다. 특히 눈 내리는 바다의 이미지를 매화와 함께 그린 것은 금년에 처음 시도했다.

늦겨울~초봄, 선홍빛으로 꿈틀거리는 홍매의 꽃망울이 하나 둘 터져 나올 때부터 하늘과 땅을 꽃잎으로 수놓을 때까지 순환(循環)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윤회(輪回)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찬란한 생명의 환희를 그렸다.

고매(古梅) 앞에서면 숙연한 마음과 가슴 뭉클한 전율을 느낀다. 고매 나무의 뒤틀어지면서도 절제되고 자유로운 형태와 나무둥치의 썩고 거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힘차게 쭉쭉 뻗은 가지에서 핀 형용할 수 없는 고운 꽃잎을 보면 험난한 삶의 여정을 견뎌온 아련한 고향의 봄 혹은 어머니의 사랑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꿈속 같은 고매의 향연에 빠진다. 매화(梅花)작품은 대부분 오래된 사찰(寺刹)에서 그렸는데, 계절적 감각을 살리면서 현장감과 생동감을 강조했다. 작품은 매우 속도감 있게 완성한 것도 있고, 여러 해 동안 연속하여 그린 것도 많다. 즉 주제/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통해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표현기법에서 작품의 배경이미지는 아크릴을 주로 사용하여 담백하면서도 풍부한 물맛과 추상적인 분위기를 강조했고, 매화 꽃/나무는 형상(形像)을 유지하면서 유채의 장점인 마띠에르 효과를 리드미컬하게 적절히 강조하면서 수채화처럼 싱그럽고 경쾌한 맛을 살렸다. 즉, 본인의 매화시리즈는 한국의 전통 수묵화와 서양화 표현재료의 장점을 조화시킨 현대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잠자리의 사계(四季)’는 1990년부터 그렸는데, 2005년 ‘겨울잠자리’시리즈에서부터 매화와 잠자리를 같은 화면에 그리기 시작했다.

표현재료

작품들은 대부분 캔버스에 유채로 그렸다. 단순하게 형태를 함축해서 표현한 서퍼/파도/일출은 힘이 넘치는 붓 터치의 자유분방함과 유채물감의 풍부한 마띠에르, 그리고 유채기름(Poppy, Liquin)의 매력은 그림을 그릴수록 그 맛에 빠진다.

 

 

 

 

 

아래 글은 2000년대 초~중반 씀 =============================================================

작 품 세 계

내 그림에 있어서 일관된 관심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건강하고 순수한 이미지의 추구이다. 원초적인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순수함과 일상 속의 자유로운 삶의 모습이 그것이다. 자연은 단순히 심미적 감상에 머무는 존재로 파악하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개선해 나가는 의지를 담는 매개체로 보고자하며, 사람들의 모습에선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꿈꾼다.

 

자연에 대한 것은 잠자리, 과수원, 꽃, 낙엽 그리고 대지(大地)의 변화무쌍함을 즐겨 그리며, 인간에 대한 것은 일상 속에서 느끼는 삶의 단편들을 작품 속에 담는다.

창공(蒼空)을 자유로이 날아가는 잠자리에선 자연과 하나 되는 무아(無我)의 경지와 삶에 대한 철학적 의미도 생각한다.

청록으로 물든 과수원의 풋풋한 모습은 푸르다 못해 동해바다의 짙푸른 물결과 같고 때론 검은 철판과 같은 엄청난 힘마저 느껴진다. 빨갛게 익은 사과 빛은 터질 듯한 피의 물들임과 같다.


표현기법에서는 시각적 리듬감과 맛을 중요시한다.

시각적 리듬감은 붓과 나이프의 경쾌한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생명력을 중요시한다. 표현 재료에 따른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시각적 즐거움을 함께 담고자한다. 그리고 재료의 특성에 따른 인위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의 어우러짐에 의한 효과에도 많은 관심을 둔다. 표현 방식상 추상적 이미지와 구상적 이미지에 대한 특별한 구분은 없다.

 

그 동안 나는 유채와 수채화를 즐겨 사용해 왔다. 최근엔 아크릴과 기타 혼합재료도 사용하지만 유채의 맑고 투명하면서도 끈끈한 느낌과 자유로운 마티에르에 색채와 터치의 변화무쌍함에 많은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것 자체에 대한 즐거움도 중요시한다.


작품속에서 나는 내 자신의 체질적인 것과 한국적인 정서가 녹아든 것에 많은 관심을 둔다.

현실적인 체험과 동시대적인 것도 잃지 않고자 한다. 전통과 미래의 접목 속에서 나와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그 동안 그려왔던 자연과 일상 속의 단편적인 이미지들에서 더욱 원초적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이상을 담고자 한다. 

 

 

1, 잠자리의 사계(四季)

 

1990년대 이후 그린 자연의 단편적인 이미지 중 잠자리는 지금까지도 즐겨 그리는 소재(주제)이다.  나는 잠자리를 통해서 살아 숨쉬는 현대문명의  정제(精製)된 힘과 자연그대로의 생생한 삶과의 상징적 결합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잠자리의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비행은 동심의 미묘한 변화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자유로움을 메아리친다. 즉 나의 잠자리는 자연으로의 복귀와 자연적 삶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곳에서 잠자리 연작은 계속된다.

이것은 제한된 인간의 끝없는 상상력 및 영혼과 정신적 공간의 신비스러움을 나타낸다.


잠자리의 포효(咆哮)하는 듯한 날개 짓은 현대문명의 거대한 힘에 의한 역동성과 대자연의 힘찬 생동감을 담고자 하는 삶의 건강함과 순수함을 나타내고자 했다.

푸른 창공을 마음껏 날아가는 잠자리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해방을 나타내기도 하며 동심의 세계이기도 하다. 즉, 자연그대로의 모습처럼 살다가 자연 속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무수한v잠자리의 비행은 끊임없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대한 갈구를 나타낸다. 여백의 공간은 무한한 상상의 공간이며, 우주의 신비로움이기도 하다.

 

 

 

2, 겨울 홍매화(紅梅花)

 

겨울 홍매화’는 잠자리의 사계 연작(連作) 중 한가지다. 최근 잠자리와 함께 내 작품의 주된 테마 중 한가지인 매화꽃은 군자(君子)의 절제된 높은 정신세계를 담고자 한 것이다.


2003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통도사(通度寺) 홍매(紅梅)는 매년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이곳에서 본 홍매는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만을 전한 것은 아니었다. 천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불심(佛心)의 숭고함과 부처님 세계의 신비로운 향기가 느껴진다. 그곳에서 선홍빛으로 꿈틀거리는 홍매의 꽃망울이 하나 둘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캔버스에 유채로 찬란한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고 삶의 유희를 만끽했다.

홍매를 볼 때면 어린시절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읽었던 아름다운 전설이 떠오른다.

어느 깊은 겨울날, 홍매화를 보고 싶다는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위하여 고민하던 중, 꿈에서 산신령님을 만나 눈(雪)덮인 깊은 산속에서 홍매화를 발견한 후 그것을 어머니께 보여드리니 다시 살아나 오랫동안 행복하게 함께 살았다.”


눈 속에 활짝 핀 홍매를 본 순간 가슴 벅찬 환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금방 녹아버렸다. 눈 속에 핀 홍매를 밝고 경쾌한 색채로 부드러운 듯 힘찬 필력이 살아 넘치게 그린 그림은 마치 수채화처럼 상큼하면서도 싱그럽다. 겨울잠자리를 배경바탕으로 아크릴 물감을 깔면서 청명한 밤풍경을 먼저 그린 후 그 위에 유채로 홍매화를 붓끝 가득 물감을 듬뿍 찍어 일필로 그려나갔다. 한국화 작품을 보는 듯 시원한 여백의 미와 유채의 강력한 색채와 마티에르의 조화가 절묘하다.


“전설 그리고 삶의 부활(復活)”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밤, 밝고 청명한 달을 바라보면서 어린시절 들었던 “달에는 한 그루의 계수나무가 있는데 그 계수나무 아래 토끼가 절구질 한다”는 전설을 실제인 것처럼 느끼면서, 그리고 달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잠자리와 함께한 아름다운 나의 설화(說話)를 그렸던 것에서,


꽃망울을 품고 있는 홍매화의 붉은 빛은 생명력 넘치는 맑고 신선한 피와 같은 생명의 고동소리가 느껴지고, 썩은 듯한 고목나무에서 새 생명(봄)이 탄생되는 모습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이 곱고 신비롭다.  나의 겨울 잠자리는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홍매화와 함께 또 다른 아름다운 설화(說話)를 위하여 캔버스 위를 훨훨 날아간다.

 

 

3, 사과나무

 

사과 과수원은 1990년 대 초부터 즐겨 그린 것으로 언제나 내 마음속의 고향이다.

그곳은 내가 어린시절 자연의 풍요로움과 신비, 그리고 삶의 순수함과 건강한 모습을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내 마음속의 이상향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과 과수원을 찾으면서부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한 휴식과 어린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특히, 한여름에 보는 풋풋한 사과의 터질 듯한 생명력은 언제나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청년기에 접어든 사과나무의 유연하고 힘찬 자태는 살아 숨쉬는 듯한 생명력 그 자체이다.

청록의 풋풋한 여름사과 나무의 짙푸른 잎들과 싱그럽게 주렁주렁 달린 푸른 사과는 동해바다의 검푸른 바다처럼 힘찬 생명력과 통쾌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루 종일 맨발로 소나기 쏟아지는 듯한 땀방울 속에서 생명력 넘치는 자연을 예찬하면서 단숨에 그려나갔다. 작품속의 사과나무는 대부분 청년기에 해당된다.

 

 

 

4, 표현재료

 

 

내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는 유채(Oils)다. 그리고 아크릴(Acrylics) 과 수채(Water color)도 함께 사용한다. 대학입학 후 그리기 시작한 유화(Oil painting) 작품을 보면 재료사용면에서 문제점을 많이 발견한다. 체계적이지 못했던 대학시절을 거울삼아 재료사용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현재 내가 사용하는 캔버스는 대부분 전문가용 아사천이나 반아사천을 캔버스 틀(왁구)에 씌워 제소(Gesso)를 여러 번 얇게 칠한 후 다시 유화물감 화이트(White)를 린시드(Linseed)와 페트롤(Petrol)에 적당히 용해(溶解Solution)한 것을 얇게 칠한 후 Linseed의 누런색이 우러나올 때 까지 수개월을 기다린 후 그림을 그린다.


유화물감은 8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산(産) 르프랑(Lefranc) 전문가용 물감을 주로 사용해 오고 있다. 굳이 르프랑 전문가용 물감을 고집하는 이유는 다른 제품에 비해 맑고 경쾌한 효과가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수채화의 투명하고 경쾌한 맛과 속도감 있는 터치의 회화성을 좋아한 내 그림스타일에다 풍부한 마티에르 효과가 더해지는 유화물감의 특성으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유화를 그릴 때 보조재로 쓰는 것은 영국(産) Winsor&Newton의 릭퀸(Liquin)이다. 여기에 Linseed(국산)나 Poppy Oil(프랑스산)를 적절히 혼합해서 사용한다. 요즘엔 주로 Liquin이나 Poppy Oil을 독립해서 유화물감과 혼합해서 그릴 때가 많다. 이런 방식은 초창기 그렸던 그림들과 비교하면 작품보존성과 표현성에서 차이가 뚜렷하다.

아크릴 물감은 영국(産) Winsor&Newton과 호주(濠洲)산 Atelier 그리고 국산 Alpha 제품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아크릴은 유화처럼 보조 재료에 따라 표현효과가 다양한데 주로 풍부한 회화적인 맛을 위해서 물의 농담을 중요시하고 아크릴물감의 적절한 윤기(광택)를 위해서 Gel Medium을 사용할 때가 많다.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캔버스에 그리기 전 Gesso를 사용해서 여러 번에 걸쳐 밑바탕작업을 한 후 그림을 그린다.


수채화 그림은 특별하지는 않다. 다만 전문가 물감의 미세한 차이를 염두에 두고서 표현하고자하는 주제에 따라 화지를 여러 가지로 바꾸어 그림을 그린다. 아무래도 빛에 약한 수채화 물감자체의 한계 때문에 전시/보존에 특별한 신경을 쓰는 편이다.

 

 

 

평론 - 자연의 생명력 =========================================  

 

때론 작가는 하나의 성공적인 자신에 대한 화풍이 수립되면  그것을 곧 독단적인 보고로 변형해 버리는 인간의 자연스럽 오류를 종종 범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관념의 형성에 관한 어떠한 실험적 접근에 내재하는 당황스러움의 순간에 직면하게 되면 항상 물러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를 경계하고 나아가는 작가가 있는데 이가 바로 김창한이다.

김창한은 지금까지 3번의 개인전이 있었다. 91년에는 원초적인 인간과 자연에 대하여, 94년에는 삶과 자연을, 95년에는 추억과 자신에 대해 관심을 드러내 보였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잠자리(곤충)에 대한 자연과 순수한 생명력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번에 발표하는 <비행>(飛行), <잠자리-날자>, <추억만들기> 등은 유채, 아크릴, 수채로 그 표현의 영역을 더해가고 있다.
특히 캔바스의 여백이 그대로  드러나는 양상이 취해지고 있는데 이는 생명에 대한 호흡을 의미한다.
       또한 그의 화면은 강렬한 색채가 가차없이 퍼부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그토록 갈구하고자 했던 힘이요 생명력인 것이다. 그리고 둔탁하게 덧칠해진 표현은 무엇인가가에 이끌리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의 화작(畵作) 중 <추억만들기 3>은 화면을 사각으로 등분한 위에 잠자리를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각각의 분할된 공간을 한 쪽은 평필(平筆)로, 그리고 한쪽은 공허한 백색 바탕을 그대로 살리면서 잠자리만이 날고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탐구와 관련해서 볼 때, 김창한은 집중된 도식(문양)을 통하여 사물을 관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도식이란 직접적 관찰의 범위를 훨씬 초월하는 상상력의 세계를 포섭한다. 즉 이러한 도식화(schematization)작업은 상상력의 소산이며, 지성적(intellectual)인 동시에 감성적(sensible)이다.

그의 <추억만들기> 시리즈가 말해주듯이 과거 지나간 의식이나 형상들에 대단한 관심이 있어 보인다. 즉 그가 회상에 대한 잠자리라는 문양이나 형상들을 표현하는 진정한 용도는 바로 우리가 흔적과 본능으로부터 실천의 탐구와 사변의 탐구에 관한 일반적 원리들을 뽑아낼 수 있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즉각적인 사실을 초월하는 것은 바로 사변의 본직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는 곧 의문에 대한 탐구에 있는 것이다. 즉 사변에 대한 임무는 사유로 하여금 창조적인 미래를 창출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른바 사변 이성은 관념의 세계에 대한 미래의 창조를 강조하며, 또한 관념의 체계는 관찰을 내포하기도 한다.

흔히 초월할 그 무엇이 없는 상태를 "무방지인(無方之人)"이라 한다. 이는 곧 복속(服屬)이 아니라 자유를 갈망한다.  "무방", 그것은 궁극적으로 세속적인 내(內)와 외(外)의 구분이 본질적으로 해소되는 것을 말한다. 결국 그는 잠자리를 통해서 자유에 대한 호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호흡이 바로 생명력 그 자체인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 작가가 잠자리라는 상징에 대해서 행동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상징된 궁극적인 사물에 대한 여러 가지 관련도 직접적으로 삭제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또한 그러한 상징은 그 자체로서는, 그 직접적 연합적 힘이 자동적 순응을 발출하는데 불충분한 사실들로 엮어져 있기 때문에 경험이 더욱 더 필요하다.
        

즉 무엇을 체험했다 했을 때의 경험주의는 즉각적 목전의 이해에 의해 감금된다. 그러한 것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혹은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명료하게 획득하면 할수록 결정으로 선행에 처한 방법과 즉각적으로 조화되기를 거부하는 증거의 사계들이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게 된다.
여기서 조정할 수 있는 방법론이라는 것은 사고와 행동의 통합을 변호하며, 이러한 것에 의하여 생명적 발상과 충동은 존재의 핵심이며 만족으로서 자신을 표현한다.
그러한 표현중에, 코스모스 위로 가볍게 날아오르는 잠자리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추억만들기 1,5>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잠자리에 대한 형상, 혹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각가지 화려한 색상이나 여백들은 대자연에 대한 자유를 갈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적 자유의 획득이란 그러한 것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의미하며, 더욱이 이러한 총체적 파악이란 통시적(通時的) 가능성의 공시적(共時的) 압축태가 공존해 있음에 다름 아니다.

그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자연을 본질적 대상으로 인식해 가고 있으며, 유기와 비유기의 표현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또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 하기도 하고 추구하려 하기도 한다.
이는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새로운 태도이자 관점이다. 그리고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 "무우신명이동우애락"(茂于神明而同于哀樂)과도 같은 격조(格調)와 풍모(風謀)를 보여주는 것이다. 곧 형상을 통하여 정신세계를 묘사한다는 "이형사신"(以形寫新)에 다름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림을 그리려는 사람은 반드시 "의경"(意境)을 통하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역시 마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의지(意)이다. 그리고 의지의 본체는 지식(知)이다. 따라서 의지의 지향은 사물(事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지의 표현중에, 그의 화작(畵作)인 <비행>(飛行)은 캔바스 천의  여유로움과는 대조적으로 살아 꿈틀거리는 잠자리가 무엇인가에 이끌리기라도한 듯히 한쪽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것 역시 여백의 문한한 생명력과 현실에서 보이는 의지의 생명이 공존하고 있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일반적으로 형상을 취한다는 것, 이것은 단지 외적 조건에 불과하다. 어떠한 외적 조건이란 것은 내적 경험을 연마하기 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비록 그는 문양을 그렸지만 내적으로 승화시키는 파괴작업을 해 왔다. 이처럼 그가 하나의 의식의 세계를 갈구하는 것은 내적 자기변형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창한의 예술적 본질에는 "신운"(神運)이 강조된다. 이러한 "신운"은 한 개인적 본질의 드러남이며, 이는 곧 인간의 생명력(生氣, 生意)과도 친화를 가지게 됨을 알 수 있다.

 역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의식의 사상, 그리고 미학은 "자유를 향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심미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가 걸어가고자 하는 예술의 길(藝道)에 무한한 "중득심원"(中得心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00년 11월갤러리 공간 초대전  서문 -   글/황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