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k Date 2018-07-31 22:35:25
 Title 공업탑-작품소장
https://youtu.be/xyFlx1S3XFY
유투브 링크

Never Sleeping - Dynamic City Ulsan #9
잠들지 않는 역동의 도시 울산

Artist - Kim Chang Han
작가 김창한
July, 2018

본 사업은 울산문화재단 2018 예술창작발표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사업명 : 김창한 개인전 – 울산 환경/공공미술의 이상향
사업목적 : 울산 환경/공공미술에 대한 시각적 아름다움과 발전방향 모색,
환경/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그 가치를 새롭게 보게 함.
전시 : 2018.12.11.~16 울산 울주문화예술회관 전시실 http://www.uljusiseol.or.kr/uljuart

전시내용 : 울산의 대표성이 강하고 특징적인 환경/공공미술 중 삶과 조화로운 모습을 그림으로 담는다. 아울러 국내 및 해외의 대표적인 사례도 함께 전시한다.

On the video
* 1962~2018, Gonguptap-Rotary (공업탑 로터리 - 울산공업센터 건립 기념탑)

This is Gonguptap-Rotary located at the Namgu district in Ulsan.
In 1962 when this tower was built, there were no buildings but only empty fields and farms. This is a symbolic monument of the 'Miracle of Ulsan' and the industrialization of Korea.
I am greatful that I can paint the great developments of Korea symbolized like the rising sun in the painting this tower.



Ulsan industrial monument
蔚山工業센타 記念塔

蔚山工業센타起工式致辭文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여기를 신공업 도시로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번영을 재현하려는 이 민족적 욕구를 이곳 울산에서 실현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민족 재흥의 터전을 닦는 것이고 국가 밴년대개의 보고를 마련하는 것이며 자손 만대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인 것입니다.
제 2차 산업의 우렁찬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산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이에 도래하였음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빈곤에 허덕이는 겨레 여러분
5.16혁명의 의의는 어떤 정권에 대한 노욕이나 정체의 변조에도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오로지 이 겨레로부터 빈곤을 타파하고 자손만대를 위한 복지를 위해 경제재건을 성취하려는 숭고한 사명감에서 발기했다는 것입니다.
이 공업도시야말로 혁명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추도이며 기 성패는 민족 빈부의 판가름이 될 것이니 새로운 각오와 분발 협동으로 세기적 과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 분기노력해줄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1962年 2月 3日 國家再建最高會議 議長 陸軍大裝 朴正熙



나의 공업탑 이야기 my opinion about the monument
2003.6.8


울산 공업탑은 단순한 환경/공공조형물의 의미보다 역사적 상징물로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 고 있다.

1, 공업탑 조형물 중 여신상과 관련하여,
우리의 미적(美的) 의식/정신성에 관한 예기를 하고 싶다. 일제식민지 시절부터 본격화된 근대화의 유입에서 일방적인 서구의 맹종(盲從)은 미술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근대미술의 기치아래 우리의 선각자들은 대부분 일본을 통하여 서구적 미술수법을 많이 배워왔고 그것을 국내에 전파했다. 공업탑 여신상은 서구 미술의 고전주의적 미의 원형인 그리스, 로마 시대의 것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상징적으로 비교하게 할 수 있게 한다.
단적으로 공업탑 로타리의 여신상은 평화와 풍요의 한국적 상징성의 기념비적인 이상적 표현과는 거리가 먼 서구인의 미(美)의 원형을 모방한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관련된 사진은 현재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밀로의 비너스'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작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리고 수 세기 뒤의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으로서 서구 고전주의 미술과 서구인의 정신성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녹아든 그들의 이상향을 상징한다.

울산 '공업탑'은 민족적 자주성에 기초한 주체적인 국가재건(경제발전)에 대한 결연한 의지에서 출발한 표상임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비문에 새겨진 글귀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신상 조형물은 그러한 뜻의 상징성(민족성, 주체성)과는 많은 거리를 느낀다. 그나마 옆에 있는 두 남성상의 역동성과 가운데의 추상적인 도시적 이미지물이 어느 정도 보완해 주고 있음에 위로할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서구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부분별하게 너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고교 3년 동안 그리스/ 로마시대의 신화적 이상향을 조각한 석고상들을 눈감고도 외울 정도의 실력(?)을 갖출 것을 요구한 것이 우리나라 미술계를 이끌고 있는 미술 대학이 입시과목으로 설정한 것은 문제가 많다. 해방 후 부터 시작된 대학입시 과목이 5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은 단순한 대입 실기종목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미의식과 정신성에 대한 근본적인 자성이 필요하다.

참고
The Birth of Venus - Botticelli, Renaissance 비너스의 탄생-보티첼리, 1486, 이탈리아 Statue of Liberty - New York 자유의 여신상 - 1884, 뉴욕
Venus de Milo - BC1C~2C, France 밀로의 비너스

2, 두 번째 이야기는 공업탑 주변의 환경이다.
아무리 공업탑 혹은 다른 여타 지역의 여타 조형물이 뛰어난 예술성을 표현한 걸작이라고 해도 주변이 제대로 정비되지 못하고 있다면 그 값어치는 반감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래에 있는 사진은 울산시 전체와 비교할 때 그 나마 양호한 상태이다. 울산시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눈이 어리러워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각종 옥외 간판들과 현수막 들이 난무하다. 거리에서의 시각적 공해는 공단 환경오염보다 덜하지 않다. 이러한 것은 밤 낮을 가리지 않는다. 밤에는 마치 도시전체가 거대한 환락의 중심인 거대한 나이트클럽의 무대를 연상케한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계속 추가로 만들어야하는 전력사용의 문분별한 소비는 건강한 정신성의 회복을 위해 많은 생각이 필요함을 느낀다.
자본주의의 극치을 이루는 미국에서도 거리의 간판과 현수막 그리고 옥외 시설물 관리는 우리와는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문화선진국 유럽의 경우에도 도시전체가 환경/공공미술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고서 간판하나 색상하나라도 철저한 검증을 거치고 있다. 물론 미국 이라고해서 모두 그른 것은 아니었다. 뉴욕의 중심부 '맨하튼'은 거리의 대부분이 깨끗이 잘 정돈된 상태였지만 울산의 허술하고 어지러운 상업지역과 매우 흡사한 곳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차이타타운' 거리였다. 즉 중국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거리였는데 그곳의 어지러운 거리모습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깨끗하게 잘 정비된 거리는 수준높은 환경/조형물의 제작과 사후 철저한 관리 못지 않게 우리의 정신성에 깊은 영향을 줌을 다시한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2003.6.8


- 경상일보(기사보도 2000년대 중반) - 글; 정명숙, 사진; 권일 참조
『1967년 이후 공업탑은 로터리 한가운데에 힘차게 솟아 있는 기둥모양의 흰색 탑과 두 기의 인물상이 세트를 이루고 있다. 추상적인 탑과 구상적인 작품이 당시 시대상을 담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기는 하나 조화롭지는 못하다.
톱니바퀴 모양의 기단위에 5개의 기둥이 하나로 모아졌다가 다시 약간 벌어지면서 월계수 잎으로 장식된 지구본을 들고 있는 것이 중심탑이다. 높이는 28.5m에 이른다. 기단은 화강암, 기둥은 시멘트로 만들어졌다. 외벽에는 하얀 페인트만 칠했다. 5개의 기둥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상징하면서 아울러 인구 10만의 울산이 50만 규모의 도시로 성장하라는 염원을 담았다.

그 탑을 가운데 두고 망치와 쇳덩어리를 들고 선 두 남자상과 두손을 번쩍 들고 선 여신상이 등을 돌리고 서 있다. 남성상은 근면 인내 노력으로 공업도시 울산을 건설하자고 말하고 있고 여인은 조국 근대화가 원숙해져 평화로운 한국이 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근대화의 기수'라는 가장 간절했던 희망을 비구상과 구상으로 고루 표현한 것이다.
인근이 허허벌판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로서는 매우 웅장한 구조물이었을 텐데 지금은 주변에 큰 건축물이 세워지면서 오히려 왜소하게 느껴진다. 공업탑이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성도 그만큼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1976년 조각품 주변으로 분수대와 화단을 조성하는 바람에 공업탑은 더욱 로터리의 중심이라는 이미지 속에 간혀 메시지는 더욱 작아졌다.

공업탑을 제작한 사람은 박칠성씨(72). 북한 출신인 그는 1953년 속초에 수복기념탑을 제작한 뒤로 전국의 곳곳에 많은 탑을 만들었다. 현재는 충남 청량군 칠갑산 도립공원 구역내 칠갑산 노래공원을 조성해 그곳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공업탑은 올해초 경상일보가 '울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상징물을 꼽으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공단'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전체적인 이미지가 아닌 상징물로는 공업탑이 1위로 선택된 것이다. 공업탑은 공업도시 울산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구조물로서 울산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기록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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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관문인 공업탑로터리. 중간에 우뚝 서있는 이 탑의 원래 명칭은 울산공업센터 건립 기념탑이였다.
1962년 공업센터 건립이후 울산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으며, 높이 28.5미터의 공업탑이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춘것은 아니였다고 한다.

1967년 탑과 동상이 먼저 조성되고 1976년에는 분수대와 화단이 만들어졌다.
철근 콘크리트물인 5개의 기둥은 경제발전 5개년 계획과 인구 50만을 상징한다.
당시 인구 10만이던 울산이 인구 50만의 도시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고 하니, 아이니컬하다.

탑 상부에 위치한 지구본은 세계평화를, 월계수 잎은 승리를, 그리고 톱니바퀴는 공업도시 울산을 상징한다.
울산이 세계로 뻗어나가 공업한국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이다. 탑의 앞뒤를 지키고 있는 청동 남성군상은 근면과 인내로 공업도시 울산을 힘차게 건설 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으며, 또다른 여성상은 자유의 여신상을 본따서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만든 것이며 두손을 번쩍들어 동쪽의 해를 맞이하고 있다.
건립당시 상반신이 드러났다는 이유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탑과 동상은 북한출신 조각가 박칠성씨가 설계,제작했으며, 예산 500만원은 울산시와 청와대가 절반씩 부담했다.
공업탑 준공식에는 박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사카린 사건'으로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했었다.
탑 아래에 새겨진 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은 독일의 루르의 기적과 민족재흥의 터전을 울산에서 실현하자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물론 지금은 환경오염문제로 인한 산업발전의 부산물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On the street – Permanent collection in Ulsan metropolitan city #7
1, Ulsan Metropolitan Office of Education
2, Ulsan Institute of Foreign Language Education

작품소장 – 울산광역시 교육청 / 외국어 교육원

23년간 미술교사로 일한 뒤 정년을 8년 반 남긴 2018.2월 말 명퇴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해외에서 작품활동에만 몰두하기 위함이었다.
한학기가 지나는 동안 바쁜 작품 활동으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평생 배움에 나이제한은 없다, 가장 큰 가르침은 스스로 배움에 몰두하는 것이고 그런 모습이 가장 큰 가르침인 것을 되새겨 본다.

어제는 불타는 여름밤을 지인 분들과 부산항에서 오랜만에 술자리를 함께했다.
모두 나보다 연륜이 많은 분들로 국내외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인 교수 분께서 요즘 아침 8시 중국어를 공부하러 간다고 했다. 그런데 그 스터디 모임엔 자신이 가장 나이가 적다고 했다. 다양한 이력을 가진 분들이 수십 명 모이는데 대부분 상당한 수준이라 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고 했다.
어제 함께 자리했던 다른 분은 중국 유명대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아침 8시부터 수업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중국인들 특히 한족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성실한지를 피부로 느꼈다고 했다.

첨부한 첫 번째 작품은 울산광역시 교육청이 개청(開廳)할 때 치열한 공모를 통해 선정되어 오랜 세월 교육감실 앞에 전시된 모습이다. 지금은 윗 층으로 옮긴 상태이다.
두 번째는 울산광역시 교육청 외국어 교육원에 작년 말 마지막 외국어 연수를 받은 뒤 감사의 마음으로 기증한 것이다.

이제 다양한 외국어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봄 두 달간 프랑스-룩셈부르크-독일에서 작품활동 하면서 웬만한 그곳 사람들이 3~4개 외국어를 구사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양한 언어 구사력은 국가경쟁력의 필수 조건임을 절감했다. 세계최고 부자나라 룩셈부르크 지식인들은 보통 4~5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작품기증
작가: 김창한 金昶漢 www.kch.pe.kr
울산예술고등학교 미술과 교사(1995.3~2018.2)
울산외국어교육원에서 오랜 기간 영어/중국어 연수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무궁한 발전을 기원함. 본 작품은 2005년 호주 지방정부 초청 개인전/워크숍과 2006년 Bond University 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Byron Bay 해변에서 그렸음. 그림의 주제는 파도/서핑인데,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는 그들의 일상과 문화적 감동 그리고 삶의 이상향을 그렸음.

Proudly the first big Oil painting was selected through the public competition when the Ulsan Metropolitan Office of Education building opened.
And the second painting was donated to the Ulsan Institute of Foreign Language Education last year.

Regarding the donation of this painting
Artist : Kim Chang Han
I am very appreciative of the English and Chinese language skills I acquired over many years, from the Ulsan Institute of Foreign Language Education. While I was invited to hold solo exhibitions in Australia (in 2005 and 2006), I painted on the seaside of Byron Bay.
The theme of this painting is “Surfing”. I wanted to paint the beauty of nature, the different cultural impressions, and the utopic of atmosphere.

추억만들기 Making Memories Oil on linen 162.2x260.6cm
전율하는 해변 Vibrant Beach, 2006, Oil on canvas 91x115cm

http://www.use.go.kr
http://www.use.go.kr/jsp/eng/index.jsp
http://ula.use.go.kr/?SCODE=S0000000529&mnu=M001901




On the street – Permanent collection in Ulsan High School of Arts #8
작품소장 – 울산예술고등학교


앞서 포스팅 한 것처럼 더 이상 교직에 안주하는 것은 나 자신과 학생/교육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내가 가장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기 위해 명퇴를 한 것이다.
주변 분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냥 자리만 지켜도 될텐데 왜 그만 두냐고, 정년퇴직 후에도 얼마든지 작품 활동 할 수 있을텐데... 라고 했다.

명퇴 후 한 학기를 지나면서 한번도 후회하거나 뒤돌아볼 틈도 없었다.
앞으로 국내/해외 작품활동은 더욱 치열하게 진행될 것이다. 그렇다고 안정적인 자금을 갖고서 혹은 든든히 후원해줄 스폰서도 없다. 오직 믿는 것은 작품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그림 자체의 영원한 아름다움만으로 수많은 미술애호가들과 소통하고 그것이 작품활동 경비와 생계가 해결되리란 믿음이다.

23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후회 없이 일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그 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가장 인상 깊은 두 가지를 말하면,
1995년 3월 정식발령 수개월 전, 무작정 예술고등학교 교장실을 찾아갔다.
장장 3~4시간 동안 교장선생님의 교육철학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한 열정을 가진 분이다. 그렇게 찾아간 내가 얼마나 세상물정 모르고 철없이 찾아간 것인지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한푼도 금전적인 거래 없이 내가 근무하도록 해주셨기에 그 고마운 마음은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학생들과 함께 교정에서 그림 그렸던 순간들이다.
그런 시간이 너무나 짧아서 긴 여운이 남긴다.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순간을 캔버스에 담아 학교에 기증을 했다.


 Gust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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