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
KCH |
Date |
2023-02-01 21:0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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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스님께! 앞서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된 점 사과드리면서 제 입장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스님의 단호한 자세에 작년에도 이번에도 아무 말도 못해서 제 입장을 정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솔직히 20년 넘게 그곳에서 캔버스를 펼치고 그림 그렸지만 청우스님처럼 제게 단호하게 자리를 비키라고 했고, 제대로 비키지 않자 당장 나가라고 한 경우는 처음이라 황당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 3가지 판단기준을 생각했습니다. 즉, 위계질서, 보편적 생각, 상호존중/발전,
첫째, 위계질서 ? 통도사 내부사정은 잘 모르지만 나름 위계질서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즉, 제가 그동안 그곳에서 캔버스를 펼치고 그린 것은 전체적으로 그런 질서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작년에 결국은 그날부터 자장매 그림을 포기했고, 몇일전에도 자장매를 그릴 때 “나가라”는 말씀에 작업을 포기한 것은 청우스님이 총무국장을 맡고 계셨기에 통도사의 질서를 관리하는 역할이라 판단해서 아무 말 없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제가 왜? 어떻게? 그동안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들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통도사 영각 앞 자장매와 우물 옆 고매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엄숙한 곳이기에 20년 넘게 캔버스를 펼치고 그림 그린 것은 수많은 스님(주지스님 방장스님 포함)과 신도들 그리고 방문객들의 특별한 관심과 베려가 없었더라면 불가능 했을 것이고 제가 무질서했더라면 오래전에 작업을 중단했을 것입니다.
당장(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 사태 직전 전임 성보박물관장 송천스님의 요청에 따라 몇가지 전시주제 중 매화를 주제로 한 개인전을 약속했고 자장매를 열심히 그리고, 더욱 좋은 작품을 그릴 것을 말씀하셨고, 늘 작업하는 저를 지켜보셨기에 큰 그림도 그렸습니다. 청우스님께서 제가 자장매를 그릴 때 보셨던 것은 매우 작은 그림이었습니다. 그동안 그곳에서 큰 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코로나 사태가 계속 이어지면서 대중이 모이는 대부분의 행사는 취소/연기되었고, 또 제가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것은 통도사에서 전시비용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재정상태가 많이 어려워 좀 더 시간을 갖고 전시하기로 한 상태였습니다.
그동안 3차례에 걸쳐 통도사에서 기획초대전시를 했는데, 성보박물관, 도서관(계산대제 때) 오픈 기념전, 서운암 들꽃축제 때에도 모두 지원을 받으면서 전시를 준비를 했고 훌륭한 전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작중인 큰 그림들과 작업도구들을 통도사에 안전하게 보관도 해주었고, 음식도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고 명패(전시준비)도 주었습니다. 주지 스님뿐만 아니라 성파스님(방장스님)께서도 통도사 매화를 그리는 저에 대해 많은 관심을 주셨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저는 나름 통도사의 위계질서를 따르려 노력했던 것처럼 전국의 매화로 유명한 사찰이나 명소에서 큰 그림을 장기간 그릴 때는 대부분 미리 협조를 구하거나 저를 초대하는 형식으로 그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현장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둘째, 보편적 생각(대중의 마음) ? 청우스님의 말씀처럼 제가 20호크기의 작은 캔버스를 펼치고 그림 그렸음에도 “삼분의 일 정도에 자리를 차지하고...화가님의 모습까지 담고 싶지는 않다”고 하셨고, “많은 세월의 관계속에 소유권이 생기신 것 같은데”라고 하셨고, "자장매 감상 하시는 모든 분들께 불편을 끼치셨다 생각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제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수많은 스님들이 그 자리와 통도사를 떠났던 것처럼 저 역시도 언젠가는 자장매와 통도사를 떠날 것이지만 제가 머물렀던 자리는 보편적인 대중의 마음과 함께 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스님말씀처럼 그렇게 자리를 넓게 차지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었거나 제게 소유권까지 생겼을 것이라고 오해하신다면 더 이상 그곳에서 매화를 그리지 않아도 됩니다. 솔직히 울산/부산/경남에도 많은 명품 매화나무가 즐비하고 전국적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제가 그곳에서 그림그리길 기다리고 있는 곳도 많고 최근엔 중국/대만/일본으로까지 매화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오랜세월 그림 그렸던 것이 보편적 생각 즉 상식을 벗어났다면 왜 그동안 수많은 스님들 중 누구도 제지하거나 나가라고 하기는 커녕 특별한 관심과 호의를 베풀었을지 그리고 수많은 관람객들도 특별히 관심을 보였을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보다 통도사를 오랜 세월 기도하러 오시는 신도 분들이 “추운 겨울에도 매년 이곳에서 자장매를 그리는 화가님께 감사드립니다”고 말한 그들의 선한 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사실 현장에서 그림 그릴 때 극소수 이지만 제게 불편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실물보다 그림이 더 멋지다면서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거나 화가님도 함께 찍자고 하는 등 작품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세째, 상호존중/발전 ? 20년 이전, 통도사 자장매를 처음 그릴 때 만해도 사람들의 관심은 거의 없었습니다. 울타리도 없었고 안내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장매를 그리면서 자장매와 통도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더 빠를 속도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저도 개인 웹사이트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인스타그램/카스토리/위쳇의 개인 계정을 활발하게 운영하면서 늘 저의 작품활동에 대해 많이 알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자장매를 그리면 많은 사람들 특히 사진작가들이 나무에 올라가거나 심지어 가지를 꺽고 꽃을 꺽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하였기에 제가 제제를 가하기도 했고 종무소와 스님께 여러차레 이야기를 해서 울타리와 안내판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제게 통도사 매화 지킴이 역할까지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덧붙여, 저는 2003년부터 통도사 자장매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이전부터 통도사와 많은 인연이 있습니다. 저의 집안 어른들께서도 불심이 깊으셨고, 제가 23년간 근무했던 울산예술고등학교와 출강했던 울산대학교를 통하여 학생/학부모/교직원 중 통도사와 많은 인연이 과거에도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통도사 자장매 뿐만 아니라 여러 통도사 암자 절에서도 그림을 그리면서 지금은 전국적으로 심지어 해외에 까지도 제가 통도사에서 매화 화가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고, 이런 기록은 그동안 저를 목격한 수 많은 분들과 다양한 매체의 언론보도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교방송TV와 https://www.youtube.com/watch?v=DQvGh63odNA
울산 MBC TV에 방영된 동영상 http://www.kch.pe.kr/0-bio/2-press-photos/video-0803-mbc.htm 텍스트 http://www.kch.pe.kr/0-bio/2-press-photos/video-0803-mbc-talk.htm 통도사 자장매를 그리는 저의 모습과 인터뷰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방송과 각종매체의 소개는 대부분 종무소와 스님들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던 것으로 통도사의 홍보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아울러 통도사 매화 작가라는 이름도 널리 알릴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어쨌든 지금은 통도사 매화뿐만 아니라 전국의 고매에 관심이 많고 해외로까지 작품활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기에 저도 언제까지 통도사에 얼마나 자주 가서 그림 그릴지 확신할 수 없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면 성심껏 그곳에서 캔버스를 펼치고 그림 그리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통도사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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