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KCH Date 2023-08-15 10:48:57
 Title David Macri 데비드 막리
David Macri who is a major writer of my second Art-book
데비드 막리 : 나의 두 번째 작품집-작가론을 쓸 분

Today is Independence Day of Korea.
To celebrate and reminds up the memorial day, I would like to introduce my good friend David Macri whose precious story of the War in Korea.


오늘은 뜻깊은 광복절이다.
대한민국이 독립을 한 날이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늘 내 자신을 찾으려 노력했다.
내가 작품집을 제작하는 것도 내 자신을 찾는 노력의 한 방법이다.
진정한 내 자신을 찾아가면서 더욱 가치있는 나를 찾기 위한 노력이다.

앞서 두 번째 작품집 발간에 글 쓸 분 6~7명의 이름만 언급했다.
대부분 오랜세월(10~20년) 친분 있는 분들로 내 작품/활동에 이해가 깊다.
내 작품집에 글을 쓸 분 모두 나름 치열하게 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살고 있다.
비록 국적과 가는 길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내 그림에 관심이 많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이다.

뜻깊은 광복절을 생각하면서 오랜 친구 데이비드 막리와 함께 했던 수많은 이야기 중 독립의 소중한 의미와 어울릴 이야기를 한 가지 소개한다.



< 나의 가족 찾기 >

글쓴이 데이비드 막리(캐나다 화가/일러스트레이터) 2007

- 많은 캐나다의 젊은이들처럼 연구자가 지니는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을 안은 채, 나는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칠 것을 결정했다. 그 당시에 나의 삼촌인, George "Gary" Alfred Hansen은 Hansen(외가 쪽인)쪽의 가족사를 조사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려 할 때 삼촌은 나에게 부산에 안치되어 있는 왕조부(할아버지의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군인이었던 Alfred Earnest Roy Hansen은 1951년 2월 25일에 죽었는데, 그 당시에 그는 남한에 침입한 침략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그의 부대(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프린세스 페트리시아 캐나다 경장비 보병부대)들과 진군하고 있었다. Alfred의 가족은 대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어떤 형태로든지 서로서로를 부양하곤 했다. 그들의 교육법은 사람을 향한 연민과 강한 도덕적 가치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족, 친구들, 이웃사람들 심지어 낯선 이방인들까지 돌보아주었다. Alfred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바로 이러한 궁극적 이상을 추구하는 체계 때문이었다. Gary는 Alfred의 형제자매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그가 너무나 그립다고 말했다.

- 나는 삼촌에게 부산유엔국립묘지에 방문해서 Alfred의 무덤에 헌화할 것을 약속했다. 왕조부의 묘비를 찾아가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우리 Hansen 집안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온갖 꽃들, 조각품들과 건축물들의 엄숙한 자부심으로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유엔국립묘지를 찾았다. 좁은 길을 따라가니, 캐나다 국기게양대 바로 근접한 곳에 Alfred의 무덤이 있었다. 국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그의 무덤이 있었다는 것이 야릇한 애국적인 위안을 주었다. 나는 그 국기가 마치 고국의 한 부분인양 느껴졌다.

- 그의 무덤에 기록되어있던 내용을 보려고 무릎을 굽혔을 때, 나는 그의 나이가 겨우 23세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내 할아버지의 형제인지라 나는 당연히 그가 노인일거라고 오인했던 것이다. 근처에 있는 몇 개의 묘비를 훑어보는 동안, 대부분의 군인들이 나보다 더 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는 겨우 18세였다. 나는 가족에 대한 감정과 생각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곳 한국에 있는 훌륭한 친구들과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Alfred나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이들을 만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감동적인 경험으로부터 수집되는 교훈은 분명한 것이었다. 비록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나는 Alfred가 배워왔고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도덕의 소리에 익숙해져 있음을 알았다.

- 이런 자극의 결과로, 나는 한국전쟁에 기여한 Alfred와 우리 가족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그리고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의 질문에 대한 이해의 표시로 초상화를 창작하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어떤 측면에서는, 그것이 우리 행위의 총 집약이라는 것과, 과거는 우리의 행위가 미래에 의미할 지도 모르는 것을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Finding My Family >


데비드 막리 DAVID MACRI (Born in Winnipeg, Manitoba, Canada – Canadian) 2007
알프레드 어니스트 로이 한센
Private Alfred Earnest Roy Hansen, 70x95cm, charcoal on paper
www.davidmacri.blogspot.com


- Nearly two years ago, I decided to come to South Korea and teach English. At that time, my uncle George "Gary" Alfred Hansen was researching the family history from the Hansen (my mother's) side. When I left for Korea he told me about my great uncle who was buried in Busan. Private Alfred Earnest Roy Hansen was killed on February 25th,1951 while trying to advance with his unit (Princess Patricia's Canadian Light Infantry) to repel the invaders out of South Korea. Alfred came from a big family that was used to supporting each other in anyway they could. Their upbringing instilled compassion and strong moral values. They cared for family, friends, neighbors and even strangers. It was this system of ideals that led Alfred to Korea. Gary also told me that after speaking with Alfred's brothers and sisters, even decades later, it was evident how deeply he was missed.

- I promised to visit the Busan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and lay flowers at Alfred’s grave. I would be the first from our family (the Hansens) to have the opportunity to do so. I found the beautiful UNMCK with flowers, sculptures and architecture befitting the sentiment of solemn pride. Following a narrow path, I found Alfred’s grave directly adjacent to the base of a Canadian flag. It gave me a strange patriotic comfort that he was the closest to it. I recognized the flag as a little piece of home.

- When I knelt down to look at the plaque that marked his resting place, I was shocked to see his age was merely twenty three years old. Being my grandfather’s brother, I mistakenly expected him to be an old man. Scanning some of the nearby headstones I realized most of the soldiers were younger than I, some being only eighteen. I felt a flood of emotions and thoughts of my family. I thought of my wonderful friends and the children I teach here in Korea and realized that without the sacrifice of Alfred and countless others, I would likely not have had the honor to meet them. The lesson to be gleaned from this inspiring experience was clear. Even thousands of miles away, I felt connected, at home, feeling the soundness of the morals Alfred was taught and that live on in subsequent generations.

- In response, I have created a portrait as a tribute to Alfred’s contribution to the Korean War, our family, and my quest for understanding who I am and where I come from. At the very least, I have learned that we are all, in some measure, the sum of our actions, and that the past can inform what our actions may mean to the future.


알프레드 어니스트 로이 한센
Private Alfred Earnest Roy Hansen, 70x95cm, charcoal on paper, 2007

www.unmck.or.kr

Now this work is permanently exhibiting at the UN Memorial Cenetery in Korea
아래 그림은 부산 유엔기념공원 기념관에 영구 소장/전시되고 있다



[David Macri 데비드 막리] - 사진을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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